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다운 패딩 광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이 패딩을 걸치고 ‘가볍고', ‘따뜻한’ 그 제품을 사라고 광고한다. 매년 반복되는 일인데 이제 나는 ‘아직도’ 다운 패딩을 만들어 판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을 만큼 비참한 기분이 든다.
비건을 지향하면서 알게 된 여러 충격적인 사실 중 하나가 ‘다운(down)’에 관한 것이었다. ‘덕 다운’, ‘구스 다운’은 오리와 거위의 깃털 중에서도 가장 아래 있는 솜털이다. 이 솜털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오리와 거위의 깃털을 잡아 뜯는다. 생살이 뜯겨 피가 나고 그 고통 때문에 쇼크로 죽기도 한다. 빨갛게 맨피부가 드러난 오리의 사진을 동물권에 관심이 생기고 나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입어 온 패딩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몰랐다는 것이 이상했고, 현실을 알고 나니 ‘덕 다운’, ‘캐나다 구스’, ‘리얼 라쿤’이라는 말로 그것이 ‘좋은 제품’인 양 광고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했다. 더 이상 새들의 솜털을 채워 넣은 옷을 입을 수 없어서 갖고 있던 패딩을 중고로 팔고 폴리 소재의 충전재가 든 패딩을 중고로 구입했다.(물론 비건 소재의 옷으로 옷장을 모두 바꾸긴 어려운 만큼 이미 갖고 있는 옷을 계속 입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사회는 별로 변하지 않은걸까?', '지금 저렇게 광고하는 연예인들은 다운 패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도 광고를 하는걸까?' 진실을 알게 된 나는 이렇게 쉽게 변했는데, 어째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건지 종종 의문이 든다.
얼마 전에는 빌딩을 지나다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펫숍을 발견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슬로건이 알려진 지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동물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니 펫숍 산업이 망하지 않고 있다. 유리장 한 칸에 아주 어린 강아지가 한 명씩 ‘진열’되어 있고 그런 유리장이 벽을 따라 몇 층씩 겹겹이 늘어서 있었다. 이 역시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유기 동물이 10만 명 넘게 발생한다는 뉴스가 매년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어째서 새로운 강아지들이 ‘팔리기 위해’ 계속 태어나는 건지. 사람들은 ‘새 상품’을 사고 싶은 마음과 똑같이 펫숍 강아지를 사는 걸까. 그렇게 강아지를 ‘상품’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상품처럼 진열된 강아지를 고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걸까.
비거니즘을 접한 후 알게 된 중요한 개념 한 가지는 ‘육식주의’라는 이데올로기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를 살아있는 생명과 괴리시켜 그 단절을 보이지 않게 하고, ‘원래 그런 것’, ‘자연스러운 것’이라 세뇌하는 이 이데올로기는 이렇듯 먹는 것(食)뿐 아니라 입는 것을 비롯한 인간 생활 전반에 걸쳐 만연해있다. 이것에서 벗어난 뒤에야 나는 이것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알았다. 위에서 나는 ‘쉽게 변했다’고 했지만, 돌아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 손바닥 뒤집듯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은 천지가 개벽하는 충격과 패닉에 빠졌었다. 모든 사람이 현실을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내 삶이 급격하게 변화한 것처럼 사회 전체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을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를 둘러싼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인터넷 검색을 몇 초만 해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현실을 모르는 이유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가 그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전제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현실을 아는 사람들이 계속 떠드는 수밖에. 닭알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기 위해 닭은 기울어진 케이지에 욱여넣어져 날개도 펴지 못하고, 남자로 태어난 병아리들은 산 채로 갈린다는 것을, 양돈장의 엄마 돼지는 몸에 딱 맞는 스톨*(*stall: 축산시설에서 모돈을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는 철장)에 갇혀 앉거나 일어설 수만 있고, 건강하지 못한 아기 돼지는 패대기쳐 죽인다는 것을, 소젖을 얻기 위해 소는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아기 소는 엄마 소와 생이별한다는 것을, 모피를 얻기 위해 밍크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다는 것을, ‘참치캔’을 얻기 위해 저인망으로 바다를 싹쓸이하는 어업은 지구의 최대 탄소 흡수원인 바다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