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얼마 전 생추어리 이웃에 살며, 매일 오가는 길에 반갑게 맞아주던 동물이 세상을 떠났어요. 생추어리가 처음 생길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물이라 많은 보듬이 분들이 함께 슬퍼하셨어요. 그리고 10.29 참사가 있었고, 또 다른 동물권 단체들에서 돌봄 하던 동물들이 명을 달리했다는 슬픈 소식도 연이어 들려왔어요. 이별이 많은 한 달이었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했어요.”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일상적으로는 안 하고 사는데 10.29 참사를 통해 그게 조금은 와닿는 말이 되었어요. 분노가 컸어요.”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전한 체계를 만드는게 국가와 같이 더 큰 울타리의 일일 텐데 그게 실패했다는 게 더 충격을 더하는 것 같아요. 내가 살아있는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인 것 같아요. 새벽이생추어리는 이런 나라로부터 새벽이랑 잔디를 숨기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사회적인 참사를 겪으니 앞으로 더 많이 숨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람도 신경을 안 쓰는데 비인간 동물은....”
🤍“새벽이와 잔디와의 마지막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직 깊게 들여다 보지 않은 것 같아요. 죽음이란 사건을 약간 회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감이 잘 안 나기도 해요.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회피이지만 너무 이입하지 않는 게 저의 방어기제인 것 같아요. 생추어리 근처에서 차에 치인 동물의 사체를 제 손으로 묻어준 적도 있었어요. 그 죽음을 새벽이와 잔디와 똑같은 죽음으로까지 받아들이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슬퍼져서 덤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저는 새벽이와 잔디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심적으로는 준비가 될 것 같지 않아요. 죽음에 언제나 무방비할 것 같아요. 대비할 수 없고 벌어지면 벌어진 사건에 대해 슬퍼하고 애도하고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구제역 살처분 장면이 떠올랐어요. 돼지가 돼지 위에 쌓여 압사당해 숨을 못 쉬어서 죽어가는 장면이었는데요. 포크레인으로 작업을 하는데 돼지가 선 채로 쌓였다는 공무원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10.29 참사 생존자들이 인터뷰하는 것을 보며 그 인터뷰가 다시 떠올랐어요. 사람과 달리 동물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깊게 남겨진 적이 없잖아요. 매년 살처분이 반복되는데 이 긴 시간 동안 동물의 시점으로는 한 번도 그게 담긴 적 없다는 게 슬펐어요. 동물은 15만 명이 죽어도 아무도 반의반도 애도를 안 하는 것에 대해 착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디에서 이런 마음을 나누면 ‘지금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냐.’ 이상한 사람이라는 반응이 돌아올 게 분명하니 못하지만 비건으로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 같아요. 시장 골목만 가도 시체가 널려있고 동물들의 죽음은 너무 일상적인 일이니까요. 착잡한 마음이 드는데 어디서 말을 못 해요.”
🖤“비극 앞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이 ‘동물’들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고 이런 죽음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바꿔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동물’의 위치로 낮추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인식이 전환이 안 되는 그런 점이 가끔 답답해요.”
💚“모든 동물의 죽음이 묻히는 건 또 아니에요. 고양이나 강아지와 같은 반려동물로 살아가는 동물 종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선 사람들이 매우 분노하지만 먹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안 그러죠. 그리고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잔인한 것들이 너무 많아요. 모피나 닭알 같은....”
🧡“이런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어 좋아요. 비질에 다녀온 것처럼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꼈는지를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비질도 그것 자체만 하는 것이 비질의 목적이 아니라 후속 작업까지 하는 게 진정한 비질이라고 생각해요. 무력감을 심는게 아니라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되어 자기가 보고 온 것들에 대해 얘기하며 운동의 동력이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