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의 돌봄일지
얼마 전 인스타그램으로 소식을 전했듯 잔디가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다른 새생이들은 미리 계획된 중요한 출장에 가야 했기에 잔디를 병원으로 이동하는 일을 나와 다른 보듬이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보듬이들을 기다리며 몸집이 커진 잔디를 위해 새로 구비한 이동장을 청소할 때까지는 그날이 그렇게 고된 하루가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보듬이분들이 도착하신 후 함께 잔디가 이동장에 들어가도록 유인했다. 평소 좋아하는 사료, 사과, 브라질너트, 오이 모든 것을 동원했지만 잔디는 끝까지 뒷발을 이동장에 넣지 않았다. 그리고 시도가 쌓일수록 잔디의 경계심은 심해졌다. 낯선 공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고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이동장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잔디는 이동장에 들어가기 싫다는 의사가 명백한 소리를 냈다. 잔디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닌 병원에 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임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당장 눈앞의 잔디가 내는 고통에 찬 소리를 듣는 것이 힘들었다. 잔디가 다칠까봐 힘을 제대로 주지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기에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 만큼 신속하게 해야 했는데 내 미숙함으로 잔디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한번 이렇게 듣는 것도 마음이 힘든데 도살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이런 것을 매일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싶었다.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무시하고 둔감해져야 그게 가능할 수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시행착오 끝에 잔디를 이동장에 무사히 들여보냈으나 나오려는 잔디의 힘에 비해 플라스틱 이동장은 너무나 약했다. 문을 잠그는 데도 한차례 씨름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잔디 코끝이 살짝 긁히기도 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끈으로도 이동장 곳곳을 고정했다. 70kg에 가까운 잔디가 들어간 이동장을 차량에 싣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가는 길에도 혹시나 잔디가 나오려 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으나 다행히 병원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고 긴 시간에 걸쳐 잔디는 처치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정말 끝까지 쉽지 않은 하루구나 싶었다. 상처의 심각성을 떠나 적절한 처치를 받기 위해 병원에 한 번 다녀오는 것 자체가 잔디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걸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이날 잔디는 이동장에 들어가고 또 차량 이동을 도와준 보듬이들이 있어 무사히 병원에 다녀올 수 있었다. 잔디가 무겁기에 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하고 또 생추어리 보안상 아무에게나 도움을 요청하기 어렵기에 더욱 감사했다. 새생이로서는 스스로의 한계를 느낀 하루였지만 동시에 새벽이와 잔디를 위해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계신다는 게 너무나 분명히 체감되었다. 새생이 3명만 고립되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새벽이와 잔디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도와줄 분들이 반드시 계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사실 나는 아직 새벽이 1m 안으로 가까이 가지 못한다. 내가 겁이 많기도 하고 새벽이의 몸집이 크다 보니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행동을 해도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새벽이의 송곳니가 너무 무섭다. 그렇다고 잔디를 더 잘 돌보냐고 한다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새생이로서 해야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부담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게 속상하다.
새벽이와 잔디를 만나기 전에 나는 고양이 1명을 돌본 경험이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산지 얼마 안 됐을 때 알약 한 알을 먹이지 못해 울면서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랬던 내가 지금은 고양이에게 매주 약을 먹이고 있다. 돌봄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면서 익혀 나가야 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며 새벽이와 잔디에게도 점차 더 나은 돌봄을 줄 수 있도록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