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새벽이가 나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기보단 무서워하는 것 같다. 싫어하는 것보다 무서워하는 게 더 끔찍한데. 오늘은 생추어리에서 일한 날들 중에 가장 슬픈 날인 것 같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새벽이가 울면서 도망을 간다. 원래는 반대였는데, 새벽이가 나한테 뛰어오면 내가 도망가곤 했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이냐면 등에 때문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내 무심함 때문이었지만.
등에는 엄청 큰 파리처럼 생긴 곤충이고 동물의 피부에 안착해 피를 빨아먹는다. 등에가 앉았다가 날아간 자리에 새벽이의 핏방울이 흥건하게 맺혀있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한 번은 잔디 등에 붙어있던 등에를 한 명 죽였었다. 내가 내리친 밥그릇에 맞은 등에는 땅으로 곤두박질쳤는데 죽지는 않고 많이 다쳐서 날지도 못하고 다리를 허공에 허우적거리며 뒤집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등에를 아프게 했다는 게 새삼 실감 나서 그 뒤로는 죽이진 않고 최대한 멀리 쫓기만 했었다. 새벽이가 등에한테 물려도 그렇게 가려워 보이지도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어려워지는 건 역시 몸의 크기에 비례하나 싶기도 하다. 날파리 같은 조그만 벌레들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내가 더 똑똑히 볼 수 있을 만큼 몸집이 컸다면...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을 것 같다. 벌레들은 작은 몸집 때문에 차별받는구나..
그런데 오늘은 등에가 생각보다 위협적인 존재라는 걸 누가 가르쳐줘서 알게 되었다. 등에에게 피를 오래 빨리면 염증이 생기고 세균에 감염될 수도 있다면서, 등에가 새벽이 피를 빨고 있다면 보이는 즉시 죽여야 한다고 했다. 하필 오늘은 유독 등에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날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새벽이에게 염증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조금 겁이 나서 그간 잘 죽이지 못했던 등에를 몇 죽였다. 새벽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열심히 피를 빨고 있던 등에에게 빗자루를 내리쳐서 죽였다. 당연히 새벽이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이유도 없이 맞게 된 것이다.
처음엔 싫다고 하는 소릴 내면서 약간만 삐지더니, 몇 번 더 하자 빗자루를 들기만 해도 싫어하고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뭐라고 울면서 도망을 가게 되었다. 참 멀리까지도 도망갔다.
마음이 조금 부스러졌다. 우와 내가 새벽이를 때려서 울렸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후회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내 의도가 뭐였든 새벽이한테 난 갑자기 빗자루로 때린 애였으니, 게다가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새벽이는 분명 하지 말라고 계속 말했는데...
새벽이 엉덩이 뒤에 서서 "새벽아 미안해, 용서해줘"를 반복해서 말해도 새벽이는 날 쳐다도 안 봤다. 누군들 자길 때린 사람 얼굴 따위를 쳐다보고 싶을까, 새벽이가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이 마음을 말로 전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내가 하는 사과를 새벽이는 이해를 못 할테니까... 내일 아침에도 밥을 주러 가는데 그땐 조금 풀려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날 보고 도망가지 않았으면... 새벽이 몸에 붙은 등에를 죽이는 일은 이제 정말 엄두도 못 낼 것 같은데 큰일이다...
만약 새벽이가 날 영영 용서하지 않으면 내 무심함이 벌을 받는 거라는 생각이 들 것만 같다.
후기) 다행히 새벽이는 그 후 나를 용서해줬다... 아니면 그저 쿨하게 잊어준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