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 안녕.

 나는 함양에서 무모, 이주, 마님과 점심으로 콩국수를 먹고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야. 사실 농가 방문이 의례적인 행사라고 생각하면서 별 기대 없이 왔는데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었어. 멀리 여행간 느낌도 들었다. 먼저 바삐 돌아간 누리도 즐거운 시간 보냈길 바라!

 헤어지기 전 점심 먹으면서 마님이 해주셨던 얘기가 기억에 남아서 누리에게도 이야기해줄게. 마님에게 최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조금 털어놓았어. 마님이 "새벽이생추어리는 앞으로 다가올 세상보다 한 걸음 앞서가고 있어서 걷는 길이 가시밭길인 거"라고 했어. 사회운동 단체가 다 그럴 것 같긴 한데…

 내가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보단 '도태되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던 중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어색했어. 어쨌든 마님은 "어차피 언젠가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올 거기 때문에 어떻게든 길도 열릴 거"라고 했고, 옆에 앉은 무모는 "그 말을 믿어야 겠다"고 말했어.

 요즘 혼미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앞날에 대한 고민도 대충대충 했는데 이렇게 희망찬 말들을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해주니 정신을 더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동물해방의 새벽을 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어진 '새벽이' 이름을 되새겨보게 되었어. 동물해방의 새벽을 여는 건, 새벽이를 새벽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뻔한 사실을! 동기부여가 되는 점심자리였어. 누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대답을 했을지 궁금하다.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에는 십 년 전에 유행하던 가요를 들으면서 다 같이 추억에 잠겼어. 지금은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가 나오네. 노래가 바뀔 때마다 "이게 다 언제적 노래야!"하면서 세월의 흐름에 신기해하고 있어. 우리가 지금 하는 고민도 나중에 다시 떠올렸을 때 "그게 언제적 고민이야!"하고 추억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때는 또 새로운 고민이 생겨있겠지? 그래도 나는 우리가 문제해결을 흐르는 시간에만 외주 맡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

 내가 요즘 정신없이 피곤한 것과는 별개로 아주 괜찮게 지내고 있어. 알다시피 맛있는 것도 죄책감이 들 정도로 자주 먹고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주 웃어줘서 행복해. 누리도 괜찮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늘 너무 바빠보이는 누리, 얼른 지금보다 더 여유로워지면 좋겠다. 물론 나도.

To. 영인 💌

높이 있는 열매를 솎기 위해 탔던 트랙터 위에서 무모, 영인, 이주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매생이님께서

저희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