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낮은 덥고, 밤은 추운 날들입니다.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자주 들리는 요즘, 모두 몸조리 잘 하시길 바라며, 10월의 생추어리 이야기를 풀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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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4일 세계동물의날, 세종문화회관 앞에 네 단체가 모였습니다. 동물해방물결, 동물권행동 카라, 새벽이생추어리,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봄부터 한 달에 한 번 모여 고민한 것들을 발표하는 조금 떨리는 자리였습니다.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아주셨던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최태규 활동가님은, 색깔이 너무 다른 단체들이 모여 과연 이것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각 단체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조금씩 달랐으나, 그 부분을 논의하는 과정이 우려와 달리 설렌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이들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조금 뭉클하기도 했던 기자회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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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생추어리의 발언문 일부를 공유합니다.
“2020년 8월, 처음 새벽을 마주했을 때, 저는 지금껏 한 번도 저 자신보다 크고 실제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는 비인간동물을 마주한 적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즉각적으로 이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 많던 대동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인간의 선택은 왜 항상 공존이 아닌 절멸이었을까요?
인간-비인간 관계의 상상력은 왜 ‘소유물’ 또는 ‘퇴치 대상’의 관계에서 나아가지 못할까요?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달라져야 합니다. 현재의 폭력적인 관계에서 비폭력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새벽은 고기용으로 지정 당해 태어난 돼지입니다. 축사 안에서는 소유물, 도심에서는 퇴치 대상이 되는 고기용 돼지. 영문도 모른 채로 그들은 삶의 가치를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한 온갖 폭력을 당하다 생후 6개월쯤, 몸무게가 115kg이 되면 죽임 당할 운명에 처합니다. 잔디는 실험용으로 지정당해 태어난 몸집이 작은 돼지입니다. 그는 스스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안락사 위기에 처했다가, 생추어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새벽이생추어리에는 그렇게 새벽과 잔디, 두 돼지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왔지만 국가 정책에 의해 주변에서 전염병이 발병하면 언제든 살처분 당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죽음에서는 벗어났지만 구조적으로는 언제나 위협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생추어리는 인간-비인간 관계 변화를 도모하고, 그간의 그릇된 관계 설정을 무용화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므로, 생추어리 운동은 동물을 소유물이나 퇴치 대상으로 대하는 사회에서 생살여탈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관계를 일구자는 투쟁입니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우리는 시혜적인 태도를 경계하고, 폭력적인 현실을 미화하거나 어쩔 수 없다 여기지 않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비인간동물이 겪는 폭력, 착취, 수탈, 죽음에 무감하게 설계된 사회에 의문을 제기하고 흔들림을 일으키고자 합니다.
오늘의 선언은 생추어리는 최소한 이런 곳이어야 한다는 기준이자, 생추어리 활동가들의 다짐입니다. 우리는 새벽과 잔디, 그리고 이 기자회견 중 현재도 폭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계실 분들을 기억합니다. 생추어리라는 대피소가 필요 없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식민지배가 끝난 세상을 위해 반드시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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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동물해방물결
선언의 전문은 새벽이생추어리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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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추어리, 동물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공간”
책 『동물의 자리』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말, 곰, 소, 돼지. 국내 네 곳의 생추어리 이야기를 담은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생추어리 활동가이지만, 당장 속한 단체의 활동에만 전념하느라 미처 다른 단체의 이야기는 잘 모르고 지냈던 날들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다른 생추어리의 거주 동물들을 얼굴과 이름을 잘 구분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말, 곰, 소의 삶과 그들을 돌보는 인간들의 고민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마주침이 내가 살아온 시간, 내 소비 습관부터 오래 묵은 편견들을 무너뜨릴 거라는 걸 알았다. 이 순간, 그러니까 다른 존재와 마주하면서 내가 살던 세계가 무너지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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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동물을 둘러싼 억압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
『짐을 끄는 짐승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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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 투쟁을 위해 활동하고 연대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모인 행사에 새벽이생추어리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이 소소하게 만든 박바가지와 직접 재배한 수세미를 들고 갔습니다. 수세미가 신기해서 온 이도 있었고, 새벽이생추어리를 이미 알고 온 분들도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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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노들야학에서 판매하던 연시를 구매해 다음 날 새벽과 잔디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새벽과 잔디는 경계를 넘어 즐기는 행사에는 직접 참여할 수 없다는 현실이 다시금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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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생추어리가 ‘세상과 함께’ 환경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함께’는 환경 문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삼보일배 오체투지 환경상』을 제정해 환경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 활동하는 환경 활동가들을 지원하고 연대합니다. 새벽이생추어리는 907기후정의행진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에서 배제된 존재들에 대해 목소리를 냈고, 오체투지 환경상 중 ‘워리나모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새벽이생추어리에 대한 심사평 일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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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생추어리’ 활동가들은 ‘907 기후정의행진’에서 새벽이와 잔디를 비롯한 모든 동물을 이런 존재로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차별적인 사회구조에서 배제되었던 비인간동물을, ‘새벽이’, ‘잔디’라는 존재로 명명하고 보호하는 ‘새벽이 생추어리’는 동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조명하고 변화시켜낸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습니다. (중략) 자본이 생명에게 가하는 폭력과 잔인함을 반어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 ‘새벽이생추어리’에 이 상을 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는 비인간생명 새벽이와 잔디의 안녕과 평화를 함께 기원하며 기후재난으로 폭염이 이어지는 이 위기상황에도 새벽이를 비롯한 모든 생명들이 무사히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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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마이뉴스
10월 27일, 세종에서 시상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시장식이 진행되기 전, 오랜 시간을 환경 운동에 바친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오체투지를 이어갔습니다. 과거 새만금 간척지 사업을 막기 위해 몸을 대지에 대며 걸었던 이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오체투지를 동물권 운동에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운동을 오래 한 이들에게서 겸허하게 많은 것을 배운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수상 소감을 통해, 아직은 환경 운동에서 다소 생소하게 받아 들여지는 ‘생추어리’라는 공간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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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나모상에 새벽이생추어리가 선정되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동물권과 환경이 분리된 의제가 아니기에 저희를 선정을 해주셨다고 생각하며, 연결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중략)
새벽과 잔디는 동물 착취적인 산업에서는 벗어났음에도 여전히 국가 폭력인 살처분과, 돼지 종을 향한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생추어리는 돌봄의 공간인 동시에 감금 시설이라는 모순을 안고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새벽이생추어리는 앞으로도 보호해야 할 동물과 수탈해도 되는 동물을 구분 짓는 종차별주의와, 생명을 상품과 도구로 착취하는 구조에 문제제기를 하려고 합니다. 단절된 관계로부터 돌봄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고 실현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부정의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일궈가는 새벽과 잔디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또한 돌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해온 모든 이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활동가 개인의 소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으로 오체투지를 해봤습니다. 징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숲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흐르는 물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저는 한번씩 절을 하러 갑니다. 제가 절을 하러 가는 곳은 도살장 앞입니다.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 소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줄지어 문을 통과합니다. 저는 그 문 너머의 이어지는 죽음을 막을 수 없어서 그 앞에서 절을 합니다.
절을 하는 시간 동안 엎드린 제 앞을 스쳐지나는 트럭을, 트럭에서 나오는 동물들의 비명을 듣습니다. 평생 오물 속에 산 몸이 내뿜는 냄새를 맡습니다. 오늘 오체투지를 하며, 우리가 하나로 모은 그 마음이, 자신의 알, 모유, 자유, 몸을 빼앗기고 있는 동물들에게도 연결되기를 바라며 몸을 굽혔습니다.”
대상을 수상한 곳은 ‘보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 행동’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2021년 1월18일에 확정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과 우리 강의 자연성 회복 정책을 전면 폐기한 것에 맞서려고 결성된 연대체입니다. 이들은 2024년 4월 30일부터 세종보 직상류 하천부지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세종보 수문이 닫히면 제일 먼저 잠기는 곳에서 ‘수장’을 불사하고 농성을 벌이는 까닭은 5월 초부터 세종보를 정상가동하려고 했던 정부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2024년 제5회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 심사결정문-
강을 흐르게 하기 위해 물이 잠기는 곳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존재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한편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진행된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수상한 삼척석탄화력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이인식, 제주 돌고래 서포터즈, 제주돌고래 긴급구조단, 남태제, (故)장이정수, 우이령사람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 모두에게 응원이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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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것 중 하나는, 시상식이 진행되었던 절에 있던, 새벽이생추어리가 수상한 상 이름의 기원이었습니다. 절에 살던 두 명의 개, 워리와 나모의 이름이 상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현재 두 개는 생을 마감하였지만, 두 개가 지내던 ‘생가’는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동물의 생가를 남겨두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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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더위가 가시며 숨통이 트였던 달이자, 쉴 새 없이 달려오는 동안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나왔다는 것을 실감한 달이기도 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선 각각의 형태로 투쟁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차이보다 공통된 마음을 발견하고 응원을 주고 받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사람들. 20년, 30년, 또는 그 이상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해온 이들을 보며 그 앞에서 겸허해졌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부디 우리도 그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라며 10월의 레터를 줄입니다.
모두 평안한 가을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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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웠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보내주시면,
더 나은 뉴스레터를 만드는 데 활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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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가 새벽이답게, 잔디가 잔디답게
살아가는 생추어리의 일상과
새생이들의 진심을 가득 담은 이야기들을
모아 다음 달에도 돌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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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생추어리 dawnsanctuary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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