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잔디가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넓어지는 환경적 변화가 있었다. 자연스레 산책하는 시간도 늘어났는데, 날씨가 비교적 따스한 날에는 풀과 낙엽 사이에서 먹고 탐색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며 발길 닿는 대로 산책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겨울이면 잔디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도 보여 혈액순환이 잘되도록 마사지하는 것이 주요한 돌봄 과제였던 적도 있기에, 겨울에 방에만 있기보다 산책을 하고자 하는 변화가 반가웠다.
얼마 전엔 짧은 몇 초였지만 잔디가 제대로 뛰는 모습을 봤다. 영상으로는 어릴 적 잔디가 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본 것은 내가 돌봄을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혹여나 위험한 곳에 가지 안도록 산책에 동행한 나의 존재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인지 자신을 따라오는 나에게서 멀어지려 하는, 잔디에게 유쾌한 상황은 아니긴 했지만;; 잔디가 어릴 적보다 무기력한 성격으로 바뀌거나 다리가 아파 못 뛰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에선 여전히 뛸 수 있고 뛰고자 한다는 것이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은 울타리가 없는 곳을 산책하다 잔디가 이웃한 논(다행히 벼 추수가 끝난 이후였다.)에 들어가 루팅(*루팅: 코로 흙을 파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곤란스러운 상황도 있었다. 혹시 이웃이 그 광경을 목격해 잔디가 미움을 살까 봐 걱정되었다. 다른 맛있는 음식으로 유인(?)하고자 해도 풀이 더 맛있는지 꿈쩍도 하지 않는 잔디에게 제발 가자고 사정했다. 간신히 잔디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루팅한 자리를 다시 흙으로 덮어놓은 후에야 그런 '사고'를 친 잔디의 행동에 웃음이 났다.
잔디와 산책을 하다 보면 어느 날은 돌봄 하는 인간이 너무 힘든 날도 있고, 원하는 만큼 원하는 장소를 산책하지 못하거나 간섭받아 잔디가 화를 내는 날도 있다. 그리고 때론 서로의 욕구가 어느 정도 합의되어 나름 모두가 만족하며 산책을 끝내는 날도 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서로의 균형을 맞춰가며 함께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는 그간 잔디를 알아가거나 관계를 쌓으려는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인간이 돌봄 하기 용이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잔디보다는 큰 체구에 날카로운 엄니를 가진 새벽이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병원에 갈 수 없는 새벽이의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주로 새벽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왔다. 그러다 최근 잔디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OO답게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돼지가 있어 자연스러운 곳은 어디일까?’(도시와 떨어져 자연과 가까운 이곳에서도 축사 밖 돼지의 존재를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한다.)
지금도 잔디와 친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서로 성격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떤 날은 잔디의 활동적이고 자기 의지를 표명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애정이 샘솟는다. 그 와중에 어떤 삶이 ‘잔디다운 삶’인지, 그것을 위해 옆에 있는 인간들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고민과 생각이 많다. 분명한 것은 잔디가 행복하고 편안하고 궁금해하고 때론 짜증도 화도 내는, 그런 평범한 감정들을 표현하며 살아가도 괜찮은 일상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