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새벽이생추어리에서 활동하는 보리입니다.
저는 반자본주의 기후정의 운동에서 동물권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새벽이는 축산업에서 구조된 돼지로, 새벽이생추어리는 축산업 피해자이자 인간 중심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새벽이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하고 삶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새벽이생추어리에는 실험동물이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잔디도 같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입은 이 티셔츠에 새벽이 잔디의 얼굴이 있습니다. 같은 돼지이지만 다르게 생겼죠?)
새벽이가 태어난 공장식 축산업에서, 돼지들은 태어나자마자 꼬리를 잘리고 송곳니가 뽑히고 거세를 당합니다. 서로를 공격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인데, 이들이 사는 곳이 너무나 비좁아서 몸을 움직일 공간도 없고 서로 밀치고 누르고 입에 닿는 다른 이의 꼬리를 물어뜯습니다. 선 자리에서 볼일을 보고 피부는 병들고 눈은 염증으로 빨갛게 부어오릅니다. 암모니아로 가득한 숨 막히는 공기만을 마시다가 처음 바깥 공기를 마시는 날, 도살장으로 끌려갑니다. 태어난 지 6개월, 인간 나이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합니다.
이런 지옥이 지금 이 땅에 20만 개입니다. 그 속에서 병들고 죽어가는 소, 돼지, 닭만 해도 2억 1,320명입니다. 올 한해가 아니라 지금 현재, 그리고 물살이는 빼고도 2억 명입니다. 소는 30개월 만에, 돼지는 6개월 만에, 닭은 한 달 만에 죽임당하니 얼마나 빨리 더 많은 이들이 죽임당하는 걸까요. 이들을 빨리 많이 삼키고 싶어 하는 우리 인간들은 이런 지옥을 만들어 내는 가해자입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우리도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인 우리도 좁은 곳에서 병들어 가며 서로를 공격하고, 벽을 넘어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자, 농민, 청소년, 장애인, 성소수자, 빈민이 매일 모욕받고, 쫒겨나고, 죽어 나갑니다. 억압받는 이들을 고립시키고 더 약한 이를 착취하게 만드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이 정상이라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비인간 동물에 대한 감금 강간 학살을 정당화하는 종차별주의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리고 불평등을 기반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자본주의입니다.
기후 위기의 원인은 바로 관계의 불평등과 자본주의입니다.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바깥은 불가능하다고, 모든 몸이 평등한 세상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상상력의 부재가 누군가를 죽이는 세상을 지속하게 만듭니다.
자본주의를 넘어, 서로를 가르는 선을 넘어, 돼지와 인간이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합시다. 새벽이 잔디와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아름답고 존엄한 매일매일의 일상을 누립시다. 그것만이 우리의 미래를 살릴 수 있는 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