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생추어리는 거주 동물들의 일상을 통해 기본적인 생존권을 박탈당한 다른 수많은 비인간 동물들의 빼앗긴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안식처, 피난처라는 의미를 지닌 생추어리(Sanctuary) 또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새벽은 여전히 감금된 존재이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생추어리는 새벽이 구조된 돈사와는 다른 의미의 시설이다. ‘살리는 시설’, ‘돌보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아직 이들은 원하는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없다. 두 번째 시설인 생추어리에서도 인간의 보호 아래 자율성이 침해되고 통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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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나가다.’
이 문장의 주어에 동물을 넣으며 어떤 세상이 될까?
생추어리가 동물 탈시설의 과도기적 형태라면 2차 탈시설, 즉 동물들이 생추어리에서 나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길을 걷다가 돼지를 만나는 세상, 사람이 다른 종에게 잡아먹히거나 공격당할 가능성이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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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추어리는 보호와 감금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하지만 그 초점은 울타리를 잠그는 ‘행위자’가 아니라 울타리를 잠글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의 부정의한 관습과 이념으로 향해야 바람직하다. 생추어리는 해방의 끝은 아니지만, 인간과 비인간이 맺어본 적 없는 새로운 관계를 상상해보는 시작이 될 수 있다.